[검증 대상]
"독감 백신은 감염 예방 효과가 없다." "독감 백신 맞으면 코로나 등 감염질환에 걸릴 위험이 65% 증가한다." 최근 인터넷 매체 UPI가 보도한 기사 두 건의 내용이다. 독감 백신 접종 이후 사망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는 상황에서 독감 백신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고 예방 효과도 없다고 말한다. 막연한 불안이 아닌, 과학적 근거까지 갖췄다고 주장한다.


내용의 근거가 된 건 미국 의료단체 PIC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에 보낸 편지다. '캘리포니아대학 구성원들의 독감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의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이 편지는 총 7개 주장을 들어 독감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대한다.

PIC는 또 독감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과학적 데이터라며, 7가지 주장의 근거 논문 등 18개 자료를 각주로 첨부했다.

그렇다면 이 18개 자료는 독감 백신의 예방 효과가 없고, 코로나19 등 감염 질환 위험성을 65% 높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검증을 위해 해당 논문 및 자료 18개를 직접 읽고,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했다.
[검증 방법]
관련 논문 검토 및 분석, 전문가 인터뷰(대면, 화상, 전화)
[검증 내용]
1. 미국 의료단체 주장이라 믿을 만하다?
UPI뉴스의 기사 두 건은 모두 'PIC'의 편지를 인용하고 있다. PIC는 '환자의 선택권을 중요시하는 의사들의 모임(Physicians for Informed Consent)'을 말한다.

홈페이지는 PIC를 과학적 연구와 통계를 근거로, 환자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단체로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위험성, 유아 면역력 등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 보고서를 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신 효과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다수다.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제기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PIC의 주장은 어느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까. 백신 관련 전문가 네 명에게 물어본 결과, 모두 처음 들어본다며 잘 모르는 단체라고 답했다. 환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중요시하는 시민단체 성격이 짙고, 학계에서는 권위를 인정받는 단체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 이근화 / 한양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대한바이러스학회 홍보부장)
"백신이 유해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PIC가 그런 그룹이 아닐까. 저는 그런데 이 단체를 못 들어봤기 때문에...."
# 마상혁 / 대한백신학회 부회장
"저는 이 단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게 학문적으로 증명되거나 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주장하는 단체다, 라는 정도는 인정할 수 있지만 학계에서 인정하는 단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 백순영 /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이런 건(PIC의 보고서) 처음 봐요. 미국의 내과 의사한테 물어보면 모를까. PIC라는 단체도 처음 보고. 제가 이 단체 자체를 알 수 없어서...."
# 김성한 /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잘 모르는 단체입니다."

특히,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을 포함, 다른 전문가들도 PIC가 주장하는 독감 백신의 위험성을 전적으로 믿을 순 없다고 말한다. PIC의 편지 속 주장에 대한 근거가 약하다는 게 이유다.
# 마상혁 / 대한백신학회 부회장
"논문 하나씩만으로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백신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면 끊임없이 관련 자료를 만들어서 주장하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미국 심장학회나 유사한 학회에서 독감 접종이 효과 없으니 접종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단 한번도 발표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이 단체가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성한 /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백신효능에 대한 연구는 그 연구가 시행될 때 출시된 백신의 항원성이 얼마나 일치하느지, 연구 디자인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본 연구 결과들만으로 독감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 이근화 / 한양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대한바이러스학회 홍보부장)
"입맛에 맞는 논문을 (근거로) 뽑은 거죠. 어떤 사실에 대한 접근이 다 다르니까. 이런 논문도 있고 저런 논문도 있는데, PIC에서 주장을 할 땐 다 네거티브(negative)한 논문들을 했더라고요."
# 백순영 /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이 주장 자체가 좀 근거가 빈약한 주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상 데이터가) 검증된 얘기가 전혀 아니라서...."
2. 독감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65% 증가한다?
UPI뉴스가 보도한 기사 두 건의 출처인 PIC 편지에서 첫 번째로 내세우는 주장이다. 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은 비독감 호흡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될 가능성이 65% 높아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주장의 근거가 된 자료를 확인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2017년 백신(Vaccine)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확인 결과, 백신 접종 후 호흡기 질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내용이 포함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는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소득층 가구의 18세 미만 소아 청소년에게서만 나타난 일부의 결과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결과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와 교차 검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 이근화 / 한양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대한바이러스학회 홍보부장)
"'Discussion' 부분에 보면 좀 더 상세하게 해 놨더라고요. 18세 미만이 백신 접종했을 때 (호흡기 질환 가능성) 증가한다고 돼 있긴 하지만, 성인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또, PIC가 근거로 인용한 연구 중 하나인 CID(Clinical Infectious Disease) 보고서에서는 결론 부분에 '백신 효과에 대한 타 연구에 비해 입증된 추정치가 낮았다'면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시했다. 추후 백신 효능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해당 연구 결과를 반박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했다.

PIC가 편지에서 말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장, 독감 백신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확산을 예방한다는 증거가 없으며, 백신이 독감 및 폐렴 사망률을 줄이지 못한다는 내용도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두 주장의 근거로 든 논문들을 살펴보면, 논의점 부분에서 인플루엔자 백신이 폐렴 등 합병증에 걸릴 확률과 사망률의 감소를 증명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독감 백신이 폐렴과 인플루엔자 사망률을 줄이지 못했다고 한 PIC의 주장과 어긋난다. 특히, 해당 연구가 독감 예방접종 권고를 막는 근거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도 언급한다.

전문가들과 교차검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 백순영 /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백신을 접종하고 우리 몸에 항체까지 만들어지는 시기에 있어서, 일시적으로 이런 바이러스들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더 감염이 잘 된다던지, 65%의 사람들이 감염이 더 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어떤 데이터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감 백신과 코로나19 간 연관성이 없다는 건 PIC가 근거로 든 논문의 작성 시점만 봐도 알 수 있다. 2018년 4월에 나온 CDC 보고서를 포함, 인용된 논문들은 모두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최초 보고된 2019년 12월 이전에 나왔다. 독감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는 건 애초에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 이근화 / 한양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대한바이러스학회 홍보부장)
"지금 보내주신 논문은 다 코로나랑 (관련성을) 찾을 수 없어요. 다 코로나19라고 얘기하는 이게 유행하기 전에 나왔던 논문들이어서...."
3. 독감 백신의 예방 실패율이 65%다?
PIC는 편지의 다섯 번째 주장으로 백신의 예방 실패율이 65%라는 점을 들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우며, 백신을 맞아도 독감 감염을 예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감 백신의 예방 실패율이 65%라는 연구 결과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주장의 근거가 되는 논문을 포함, PIC 편지에서 각주로 인용된 논문 18개를 모두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 역시 독감 백신이 독감을 65% 예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이근화 / 한양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대한바이러스학회 홍보부장)
"저도 봤더니 없더라고요. (연구 논문) 본문에 없죠."
# 백순영 /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이걸 근거로 해서 얘기할 수는 없고, 65%는 (논문) 어디서도 얘기한 적 없는 숫자입니다."
자료에 나온 수치를 근거로 추론해 본 결과, PIC는 독감 백신 예방 실패율의 근거로 아래 CDC 보고서 도표를 재가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CDC 보고서 원문을 확인해본 결과, PIC가 재가공한 도표가 유의미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독감 백신 항체 형성률 연구가 갖는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PIC에 유리한 방식으로 숫자를 뒤집어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 도표는 CDC 보고서 원문에 실린 독감 백신의 효과(Effectiveness)를 측정한 것이다. PIC는 해당 도표의 수치를 뒤집어 독감 백신의 실패율(Failure)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상 과학적으로 타당한 자료라고는 볼 수 없다. 전문가들도 약한 바이러스를 몸에 넣어 면역세포를 만드는 백신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항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백신 실패'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 백순영 /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특정 연도에) 이 백신의 efficacy, 즉 효과가 상당히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일정 부분 효과를 나타내고 있고, 대략 40%나 60% 정도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서...."
# 김성한 /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독감을 막지 못하는 40%에서도 백신에 의한 부분 면역력이 생기기 때문에 병을 덜 중하게 한다든지, 합병증이 적게 생기게 하는 등 도움이 되는 효과가 이론적으로 있습니다. PIC의 표에서처럼 '백신 실패(Failure)'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 이근화 / 한양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대한바이러스학회 홍보부장)
"백신은 약한 바이러스를 우리 몸에 넣어주는 거거든요. 그럼 면역세포가 그걸 기억했다가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방어를 하게 되는 원리죠. (PIC의 주장대로) 'Seasonal Effectiveness'의 반대 개념을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수치를 뒤집어서 '실패(Failure)'라고 한다면 효용성이 없다는 건데, 그렇다고 실패라고 볼 순 없는 거죠. 우리가 감염바이러스 중에서 비 바이러스를 접종했을 때 항체가 안 생기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그걸 실패로 보지는 않으니까."
[검증 결과]
UPI [단독] 기사가 근거로 삼는 PIC 편지와 각주로 인용된 18개의 자료를 확인하고 백신 전문가들과 함께 내용을 분석한 결과, PIC가 독감 백신 접종을 반대한다며 내놓은 일곱 가지 주장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자료를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왜곡했거나, 입맛에 맞는 부분만 선별적으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UPI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