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대상] 국민의힘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법"
국민의힘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촬영물 유통을 막으려고 도입된 'n번방 방지법'이 국민이 인터넷에 올리는 모든 콘텐츠를 들여다보는 '사전검열법'이고, 정작 n번방 사건이 벌어진 텔레그램은 해외 사업자여서 실효성이 없다며 재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2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n번방 방지법'은 제2의 n번방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반면, 절대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준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지난 13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전검열법,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사전검열법이 실제 동작해도 텔레그램 같은 주체는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국내 기업들의 이용자들만 검열 불안감에 휩싸이고, 사업자들도 불필요한 부담을 떠안고 사업지를 (해외로) 이전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국민의힘 주장대로 'n번방 방지법'이 '사전검열'에 해당하는지 따져봤다.
[검증방법]
국민의힘 주장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설명자료와 관련 법안, 시행령 내용을 확인하고, IT 법률 전문가에게 의견을 들었다.
[검증내용] 이미 공개된 불법촬영물, '코드'만 비교... '내용 검열' 해당 안 돼
정부는 지난해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물 처벌과 피해자 보호 등을 강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성폭력처벌법, 청소년성보호법 등 'n번방 방지법'을 마련했다. 이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은 지난 12월 10일부터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과 12월 각각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제22조의5)과 시행령(제30조의6)에 따라 "웹하드사업자 또는 일정규모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해외사업자 포함)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매출액 10억 원 이상이거나 하루 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같이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 올리는 불법촬영물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카카오톡 1대1 대화방이나 단톡방(단체톡방) 같은 개인간의 사적 공간은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하태경 의원은 지난 13일 토론회에서 "n번방 방지법은 이용자가 올리려는 콘텐츠가 범죄물일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시행되는 법"이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모든 콘텐츠가 사전 검열되는 법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는 이날 설명 자료에서 "불법촬영물에 대한 조치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 촬영물의 재유통을 막기 위해 온라인상 공개된 서비스에 적용되며,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적 대화방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촬영물로 심의·의결한 영상물이 공개게시판 등에 게재되지 않도록 인터넷사업자가 디지털특징정보만을 추출하여 단순 비교하는 방식으로,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검열 이슈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로 의결한 정보들의 디지털특징정보를 코드화해 사업자에 전달하면, 사업자는 이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동영상의 코드와 비교해, 일치하는 정보 게재를 제한하는 '필터링'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IT 법률 분야 전문가들도 n번방 방지법이 국가 차원의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IT 전문 법률가인 이상직(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13일 <오마이뉴스>에 "콘텐츠 내용을 직접 확인하면 검열이 되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면서도 "실제 내용물이 뭔지 들여다보지 않고 단순하게 기술적 코드를 적용해 같은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감청이나 검열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날 "게시되기 전에 필터링을 하긴 하지만 같은 게시물이 이미 일반에 공개돼 방심위 심의를 거쳐 불법물로 판명된 후에 추후 게시가 금지되는 것이라서 사전검열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국가 차원의 '검열'보다는 민간 사업자의 검열을 부추긴다는 문제가 있다. 오픈넷은 지난 3월 이 법이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조치 의무를 지워 이용자의 '통신의 자유'(헌법 제18조)와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헌법 제21조)를 침해할 수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박 교수는 "인터넷이라는 공론의 장을 보호하는 국제인권기준인 '정보매개자책임제한 원리'에 반한다"면서 "(법적인 의미의 '국가 검열'이 아닌) '민간에 의한 검열'이 강화될 수밖에 없어 오차단, 오삭제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검증결과]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법" 주장은 '대체로 사실 아님'
국민의힘은 'n번방 방지법'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국민이 올리는 모든 콘텐츠를 미리 들여다보는 '사전검열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공개됐던 불법촬영물이 대상이고, 콘텐츠 내용이 아닌 코드만 대조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국가가 민간 사업자의 검열을 부추겨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국가 차원의 '사전 검열'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 주장은 '대체로 사실 아님'(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