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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 정치인(공직자)의 발언
  • 정치
보충 설명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親日)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측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도 '점령'이라는 표현이 네 차례 등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증내용

    [검증대상]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한민국 출범을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했다’고 발언하면서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주장.


    [검증방식]

    1. 관련 전문가 취재

    2.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 내용 확인


    [검증내용]

    1. 취재 결과 실제 ‘조선 인민에게 고함(To the people of Korea)’이라는 제목의 맥아더 포고령에는 ‘점령하다’ 혹은 ‘점령’(Occupy·Occupation), ‘점령군’(Occupying forces)이라는 표현이 모두 네 차례 등장.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 있는 '점령' 표현은 조선을 점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을 점령했던 일본을 무장해제시키고, 조선을 독립시키려는 의도로 봐야 한다고 강조.

    2. 또한, 맥아더 장군이 작성한 포고령에는 “본관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고 명시돼 있음. 하지만 이어 포고령에는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 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점령의 목적이 해방과 독립임을 분명히 하고 있음.


    [검증결과]

    이재명 지사의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발언과 표현에서 '점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도 네 차례 등장한다. 그러나 포고령에서의 점령은 조선을 점령하기 위하 것이 아니라 조선을 점령했던 일본을 무장해제 시키고,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한 의도로 봐야 한다. 따라서 해당 주장은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정했다.

    검증기사

    검증내용

    [검증대상]

    이재명 경기지사가 출마를 선언한 7월 1일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단계에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라고 밝힌 것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이를 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 지사가 역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탄생을 폄훼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에 관해 팩트체크 해 보았습니다.


    [검증방법]

    역사학 연구자 전화 인터뷰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학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교수, 동북아역사재단 조건박사, 한철호 동국대 교수)

    이완범교수 저서 한국해방 3년사


    [검증내용]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학교수

    “역사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번처럼 역사학자가 ‘이것이 팩트(사실)’라는 식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팩트 체크가 어려운 논제들도 많거든요. 그러면 해석을 두고 어떤 것이 주류인지 다투는 논쟁이 되는 거죠.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고 따져보는 자세가 시민들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교수

    2000년대 이후로 역사학계에서 정설은 미군과 소련군 모두를 점령군으로 본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소련 모두 한반도를 영토로 두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한반도에 친미적이거나 친소적인 국가를 세우고 싶었던 것이죠. 당시에 미군과 소련군을 일제를 몰아낸 해방군으로 인식하는 한국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미군과 소련군은 스스로에 대해 점령을 위해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것이죠."

    저서 ‘한국해방 3년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합니다. "양국에 한반도는 유럽이나 중국, 일본에 비해서 가치가 떨어지지만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땅이었습니다. 어느 강대국의 독점적 소유로 넘어가면 타국에 대한 공격 기지가 될 위험이 있었죠. 그래서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바로 독립시키지 않고 적절한 과정(신탁통치)을 먼저 거치는 방안이 미국과 영국, 중화민국이 참여한 1943년 제1차 카이로 회담부터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일단 38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의견이 모아졌고 소련군은 1945년 8월 9일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함경북도 경흥군에 진입, 같은 달 26일에는 평양에 도착합니다. 미군은 9월 8일 인천으로 상륙했죠."


    동북아역사재단 조건박사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겁니다. 미군이 한반도를 바라보던 시각은 패전국이었던 일본군과 식민지배 당국자들의 시각과 일정 부분 유사했다는 것이죠. 미군의 초기 정책이 상당히 억압적이었고 점령군의 성격을 드러냈다는 겁니다. 조 박사는 점령 초기 미군의 정책은 한반도 주민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고 그것은 일본군이 일본인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서 미군의 눈을 가린 탓이기도 했다고 설명합니다. “미군이 9월 9일 서울의 조선총독부에서 항복 조인식을 열었죠. 그때 일본 측에서는 조선 총독과 조선 안의 육해군 사령관이 참석했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지점이죠. 미군이 한국을 해방시키려 왔다면 (현재로 치면) 대한민국 사람도 거기에 들어갔어야죠.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철호 동국대 교수

    “한국의 외교에서 미국의 동맹이 가장 중요하고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란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죠.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서 발을 빼려고 했던 역사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과 진실되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한다면 외교무대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겠죠.”


    [검증결과]

    점령은 한 국가가 타국의 영토를 지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전쟁이 아닌 해방 직후에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이 지배하던 땅(한반도)을 점령하려고 두 강대국이 군대를 보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미군과 소련군 모두 점령군이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사실로 확인했습니다.

    검증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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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럽위원회, FIRST D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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