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대상]
방송인 사유리 씨의 출산 소식이 화제다. 결혼하지 않고도 임신을 할 수 있는 법을 찾다 일본으로 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자은행에 보관된 정자를 기증받는 방식이었고, 임신에 성공해 얼마 전 엄마가 되었다.

사유리는 일본에서 시술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한국에선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아 시험관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국내에는 미혼 여성에게 정자 기증을 해주는 병원이 없었다고도 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많지 않은 자발적 비혼모의 길을 선택한 사유리. 국내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게 불법이라는 사유리의 주장은 정말 사실일까. 사실 검증을 위해 관련 법률과 규정들을 확인했다.
[검증 방법]
관련 법률 및 규정 검토, 전문가 인터뷰
[검증 내용]
1. 한국에서 미혼 여성의 시험관 아기 시술은 불법이다?
현행법상 미혼 여성에게 정자 기증을 금지하는 법안은 없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에 관련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미혼 여성의 시험관 아기 시술을 금지하는 조항이라곤 볼 수 없다. 미혼 여성에 대한 별도의 항목이나 규제를 두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법안에 있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관련 법 조항을 보자.

생명윤리법 제23조 ‘배아의 생성에 관한 준수사항’ 제1항에는 ‘누구든지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곧 임신을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는 건 가능하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동일 조항 제2항에 명시된 ‘배아 생성 시 금지행위’와 제3항의 ‘이익 목적의 정자 제공’만 위반하지 않으면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배아를 생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생명윤리법 제24조 ‘배아의 생성 등에 관한 동의’ 제1항에는 ‘시술 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배우자 동의는, 체외수정 시술 대상자가 혼인을 통해 배우자가 있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배우자가 없는 미혼 여성은 시술에 대한 동의가 의무 사항이 아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금지하는 강제 조항으로도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 백수진 /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구부장 : “생명윤리법은 체외에 있는 생식세포 및 배아에 대한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고, 해당 법에 따른 배아 생성 시 동의는 필수가 아닌, 배우자가 있는 경우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므로 현재 해당 행위가 불법은 아닙니다."
비혼 출산으로 화제가 된 건 사유리 씨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방송인 허수경 씨는 정자 기증을 통한 시험관 시술로 국내에서 딸을 낳았다. 자발적 비혼모는 당시에도 흔치 않은 사례였던 만큼 사회적 관심이 일었지만, 당시에도 불법은 아니었다.

2. 미혼 여성은 국내에서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없다?
국내에서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는 게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시험관 시술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에는 정자 기증을 규율하는 법률도, 인공수정을 금지하는 별도의 규정도 없다. 이 같은 법의 공백을 관련 학회나 각급 병원의 윤리지침이 메우고 있었다. 특히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을 두어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에게만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보조생식술이란 인간의 난자 또는 정자를 체외로 채취해 임신을 도와주기 위해 행하는 여러 종류의 시술을 말한다.

윤리지침 네 번째 항목인 ‘정자 공여 시술’ 부분에서는 정자 수증자의 조건 및 기준으로 가장 먼저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미혼 여성의 시험관 아기 시술을 꺼리는 이유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은 실제로 작년 ‘정자 기증을 통한 인공수정’ 관련 판례에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내용에는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정자 제공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상 부부에 한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부분이 담겼다. 해당 사건은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윤리지침의 영향력이 판결에 인용될 정도로 적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뚜렷한 법과 규정이 없다 보니, 미혼 여성의 정자 기증과 시험관 아기 시술을 불법으로 착각하는 현직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일부는 불법의 근거로 모자보건법을 든다. 하지만 이는 모성의 보호와 자녀의 건강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으로, 미혼 여성의 임신 과정을 제어하거나 제어하는 규정과는 무관하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 대한 강제 조항도 아니다.

단지 미혼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정자 수증자에게 원하는 기증자를 찾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없고, 정자은행과 공공정자은행이 보편적인 국가도 아니다. 난임 부부조차 정자 기증을 받기 어려운 현실 속, 아이를 원하는 미혼 여성이 국내에서 임신과 출산을 높은 벽으로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사유리의 출산을 계기로, 미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변화에 따른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를 존중하고, 혼인 유무에 따른 차별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백수진 /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구부장 : “사회 구성원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사고, 문화 등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논의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 또한 그러한 논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현황 등을 분석하고 사회적 논의를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한국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게 ‘불법’이라 일본으로 향했다는 사유리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검증 결과]
아이를 원했지만 결혼은 원치 않았던 사유리. 한국에서는 “모든 게 불법”이라며 일본으로 가 시술을 받고 출산했지만, 확인 결과 한국에서 미혼 여성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는 게 불법은 아니다. 정자 수증과 배아 생성에 관한 조항이 포함된 생명윤리법에도 ‘배우자가 있는 경우’만을 규정했을 뿐, ‘미혼 여성’의 시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모자보건법에도 난임에 대한 규정만 있다. 보조생식술은 난임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행해질 수 있고, 법적 부부만 난임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하지만 미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제재하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불법이 아니라고 해도 미혼 여성이 국내에서 정자 기증을 통해 시험관 시술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의료 현장에서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등을 기준으로 시술을 꺼리는 분위기이며, 심지어는 불법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혼 여성의 정자 공여 시술이 불법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