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내용

    '전세 소멸'은 정치권에서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구호이다. 특히 부동산 혼란기에는 '공포의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한국인 재산항목 '0순위'는 부동산, 그중에서도 아파트다. 자기 집을 소유한 이는 물론이고 임차인도 아파트(전세 보증금)는 재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4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4억3514만원이다. 서초구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7억7500만원에 이른다. 전세 시장의 불안정성은 임차인에게 불안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른 전세가격이 더 오르지는 않을지, 가격 불안으로 '깡통 전세'가 범람할 경우 보증금을 떼이지 않을지 걱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세는 중년 이후의 세대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였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 우선 전셋집을 마련하고 이후 보증금을 차츰 늘리다가 자기 집을 갖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구 구조와 주거 형태가 변화하면서 월세의 비중이 커졌다. 요즘 젊은 세대는 원룸 형태의 공간에서 일정액의 월세를 내고 사는 삶이 보편적이다.

    지금은 전세와 월세 중 어느 쪽의 비중이 더 높을까. 정치권 일각의 주장처럼 전세 소멸 가능성은 있을까. 이와 관련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ㆍ월세 비중은 2012년에 이미 역전됐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1일 발표한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임차가구 중 전세 비율은 55.0%, 월세 비율은 45.0%로 당시만 해도 전세 비중이 더 높았다. 2010년에는 전세 비율이 50.3%, 월세 비율이 49.7%로 비슷해졌다. 

    2012년에는 전세 비율이 49.5%, 월세 비율이 50.5%로 관계가 역전됐다. 심 의원 설명처럼 2012년을 기점으로 월세가 전세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통계는 월세가 60.3%, 전세가 39.7%로 조사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전세 소멸 논란이 있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2016년 1월13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어차피 전세시장은 가는 것"이라며 "금리가 올라길 일도 없고 누가 전세를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전세 소멸론에 힘을 실었지만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전세 비율은 40% 수준을 유지했다.

    심 의원은 "서울시 전세 시장은 충분한 자금 여력 없이 갭투자로 집을 보유한 임대인들이 많아 전세의 월세 전환이 급속히 이루어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대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싶어도 수억원대의 보증금을 갑자기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 일각의 전세 소멸 주장과는 달리 전세 수요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웬만한 집주인은 전세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집 주인이 전세를 주는 조건으로 새로운) 주택을 구입하면 목돈이 들지 않는 데다 (매년 일정액의) 전세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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