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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선거제도는 여야 합의 처리가 관행이라는 게 '여의도 정가'의 통설이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니 특정 정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게 관행으로 정착돼 있다는 주장이다. 17일 바른미래당 의원들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공직선거법은) 군사 독재정권도 함부로 날치기나 다수의 힘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세계일보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밝힌 내용은 다르다. 문 의장은 "중요한 선거제도가 바뀔 때 합의로 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거제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한국 정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회의원 선거의 뼈대인 소선거구제, 비례대표제 등을 토대로 문 의장 주장이 사실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최종 등록 : 2019.12.17 15:28

    검증내용

     "중요한 선거제도가 바뀔 때 합의로 된 적이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세계일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선거제도 개편은 여야 합의 처리가 관행이라는 '여의도 정가'의 통설(通說)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권은희, 김삼화, 김수민, 신용현, 이동섭, 이태규 등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17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공직선거법은) 군사 독재정권도 함부로 날치기나 다수의 힘으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공직선거법(옛 국회의원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다. 그렇다면 정치경력만 30년이 넘는 문 의장이 허언(虛言)을 한 것일까. 한국 정치사의 실상을 되짚어보면 결론을 알 수 있다.
     선거제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힘의 논리가 동원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행 국회의원 선출 제도의 뼈대인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전국구)제 도입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1985년 제12대 총선은 특정 지역구에서 복수(2명)의 당선자를 뽑는 중ㆍ대선거구제로 치렀다.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8년 제13대 총선 때 도입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득표율 49.9%를 기록해도 경쟁 후보가 50.1%를 득표했다면 낙선하는 게 소선거구제의 특징이다.
     소선거구제 도입은 당시 정당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였다. 야당은 위기감이 컸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에서 야권 분열은 선거 패배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감한 내용을 담은 선거법이었지만 처리 과정은 일방적이었다.
     1988년 3월8일 새벽 국회에서 소선거구제 도입을 뼈대로 한 선거법이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주도로 강행 처리됐다. 야당 의원들이 선거법 저지를 위해 단상으로 몰려가고 유인물을 뿌리며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본회의 상정 1분 만에 통과했다.
     비례대표 도입 과정도 한국 정치 역사의 우울한 기억이다. 현행 비례대표제 성격의 전국구 제도가 총선에서 부활한 것은 1981년 제11대 총선이다. 주목할 부분은 제10대 국회가 해산된 상황에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선거법을 제정했다는 점이다. 국회 해산 상황에서 야당의 견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히 비례대표 배분 방식은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1년 1월29일 제정한 '국회의원 선거법' 제130조에 따르면 가장 많은 지역구 의석을 얻은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를 배정받는다. 당시 비례대표제는 집권당이 국회를 장악하는 용도로 활용된 셈이다.
     한국선거학회는 '대한민국 선거 60년: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11대 총선) 선거법은 제1정당인 민정당에 매우 유리하게 설정된 특징을 보였다.…정권 유지를 위한 제도적인 안전 장치들을 마련한 상황에서 (치른 11대 총선은) 결과상 여당이 압승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검증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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