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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가 야권 경쟁상대인 자유한국당의 김문수 전 지사에 대해 “서울에 연고가 없다”며 비판하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서울사람 95%가 토박이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 전 지사는 경기도 지사를 지낸 후 20대 총선에 대구 수성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홍 대표의 발언에 대해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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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등록 : 2018.04.12 18:04

    수정이유: 오탈자 수정

    검증내용

    과거 서울토박이는 3대가 한성부에 살던 사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토박이’는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을 뜻한다. 서울토박이는 서울에 대대로 나고 살아온 사람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대대로’(오랫동안)와 ‘그 땅’에 대한 정의는 없다. 그래서 서울토박이를 규정하려면 ①얼마나 오랫동안 혹은 몇 대가 살아야 하는지와 ②서울은 어디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대로’는 보통 3대째 이상이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1981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서울토박이를 “보통 한 고장에서 그러니까 60~90년 동안을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 등이 대를 이어서 3대에 걸쳐 내리 살아온 사람을 얘기한다"고 정의했다. "그렇게 본다면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 합병시킬 당시를 전후해 서울 즉 한성부와 경성부 안에 살았던 사람의 자손들부터 토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당시 서울인구의 5~7%쯤을 서울토박이로 추정했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서울일까. 서울은 여러 번의 지리적 확장을 거쳤다. 1945년 8.15해방과 함께 ‘경성’에서 ‘서울’로 바뀐 후 1946년 9월 ‘서울시’로 되며 경기도에서 분리된다. 1949년 ‘서울특별시’로 되면서 한성부 도성으로부터 4km(10리) 이내의 지역인 성저십리(城底十里)를 포함해, 136.06㎢였던 시역을 268.35㎢로 확장하고 성북구를 신설, 9개구를 가진 대도시로 새 출발했다.

    1963년에는 한적한 농촌지역인 강남 개발의 필요성과 함께 양주군·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 일부가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강남은 1969년 말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고 1973년에는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진관외리, 진관내리가 서울로 편입되었다. 일제시대의 서울과 1970년대 이후의 서울은 경계가 확연히 다르다. 만약 1930년대 압구정 일대에 살았던 가족이 3대에 걸쳐 계속 살고 있다면 이 사람은 서울 토박이에 해당이 될까. 

    '1910년 이전 한성부에 정착한 사람'으로 서울시 규정

    서울시의 기준은 '아니오'다. 현재 강남은 한성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1993년 서울시는 ‘정도(定都) 600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학자들의 자문을 거쳐 ‘서울 토박이’의 선정기준을 “선조가 1910년 이전의 한성부에 정착한 이후 현 서울시 행정구역내에 계속 거주해오고 있는 시민”으로 확정했다. 3대라는 규정은 빠졌지만 동아일보 정의와 상당히 유사하다.

    한성부는 사대문안과 성저십리 지역이다. 1910년 이전 한성부의 행정구역은 사대문안과 사대문밖 10리까지로, 현재의 종로구·중구·용산구·동대문구·성북구·서대문구 전 지역이 포함이 된다. 또 영등포구의 여의도와 밤섬, 그리고 성동구, 은평구, 도봉구, 마포구의 일부 지역도 한성부에 속한다. 

    이를 기준으로 서울시가 1~2월간 서울토박이에 대한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결과 3564가구, 1만3583명이 순수 서울토박이로 확인됐다. 당시 1100만명 서울시민중 0.12%만이 순수 서울시민인 셈이었다. 전수 조사나 통계조사가 아닌 자발적인 신고로만 확인한 것이지만 일반적인 예상보다는 훨씬 적은 셈이었다.

    2004년엔 '3대가 서울에 거주'로 서울시 재규정

    이후 토박이의 기준은 다시 일반적인 '3대 거주'로 돌아간다. 지난 2004년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서울시내 2만13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04년 서울 서베이’ 결과, ‘서울시민 가운데 조부모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는 4.9%, 즉 100명중 5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는 2003년말 조사된 6.5%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로, 서울시민의 63.9%가 본인 세대부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부터 거주한 비율은 30.9%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서울토박이’의 기준은 호적제를 폐지하고 등록기준지 제도가 도입되면서 크게 바뀌게 된다.

    2008년 등록기준지 제도가 시행되면서 폐지된 호적제가 있던 시절에는 본적 심지어 원적까지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의 출신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였으며, 호적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기업 입사지원 등 대부분의 인적사항 서류를 제출할 때 본적(호적상에 올라있는 주소, 호주가 태어난 곳)지는 필수기재사항이었다. 이는 고향이나 출신지를 공개하는 셈이었고 일부에서 이를 근거로 차별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본적을 서울로 옮기는 사례가 많아지자 원적(출생 당시의 본적, 원래는 이북 5도에 본적을 갖고 있는 이가 새로 호적을 취적하였을 경우, 종전 이북 5도의 본적주소를 의미)기재를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으로 호적 제도가 폐지되면서, 본적은 없어지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등록기준지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통계도 달라졌다. 본인이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 서울토박이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호적제 폐지 이후 서울출생이 계속 살면 서울토박이

    서울시의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15세 이상 서울토박이의 비율은 40.3%로 1980년 25.1% 보다 늘었으나 여전히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서울시민 중 서울토박이 비율은 46.5%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인 지난 해 조사에서는 서울시민 중 서울 출생자는 47.8%, 경기인천 출생자는 21.9%, 비수도권 출생자는 30.2%로 나타났다. 서울시민의 반 정도가 ‘서울토박이’가 된 셈이다. 토박이의 기준이 바뀌면서 연령이 낮을수록 서울출생자 비중이 높다. 30대의 57.3%, 20대의 69.2%가 서울출생자였으나, 50대는 37.1%, 60세 이상은 27.4%만이 서울출생자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서울시민의 5%만 토박이"라고 했는데 서울토박이 기준은 계속 바뀌어 왔다. 3대가 서울에 산다는 기준을 적용한 2004년 서울시 조사에서만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1993년 서울시 조사(1910년 이전 한성부 거주)에서는 0.12%만이 서울토박이였다. 호주제 폐지 이후엔 서울 시민 46.5%가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 살고 있는 서울토박이가 됐다. 다만 서울토박이의 기준을 여전히 3대 거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고려해 홍대표의 발언을 절반의 진실로 판정했다.


    검증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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