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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제주 4·3은 좌익 폭동에 의해 양민이 희생 당한 사건"?

출처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 정치인(공직자)의 발언
  • 정치
보충 설명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주 4·3추념식은 좌익 폭동에 의해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적었다. '제주4·3추념식'은 '제주4·3사건'(이하 4·3사건)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한 행사로 알려져 있다. 4·3사건은 정말 좌익 폭동에 의해 양민이 희생된 사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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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등록 : 2018.04.09 14:26

    수정이유: 오탈자 수정

    검증내용

    [검증대상/방식]
    ◇'4·3사건'은 4월3일에 일어난 일을 지칭한다?=

    토벌대에 의한 사살 사례/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토벌대에 의한 사살 사례/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제정된 특별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정부 진상보고서에 나와 있는 ' 제주4·3사건' 정의/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정부 진상보고서에 나와 있는 ' 제주4·3사건' 정의/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이하 제주4·3위원회)가 2003년 10월 작성한 정부 진상보고서(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도 '4·3사건'은 특별법과 동일하게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돼 있다. 


    제주 서귀포시를 지역구로 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을 만나 "4·3사건은 하루가 아니라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특정일의 사건으로 한정해서 보는 것은 매우 반공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4·3사건을 그런 시각으로 보았기에 3만 명의 희생이 정당화돼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4월3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정부 진상보고서 사건 일지에 따르면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무장봉기가 있었다. 350여명의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새벽 2시를 기해 제주도내 12개 지서를 공격하고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했다. 이때 경찰 4명, 민간인 9명, 무장대 2명이 사망했다. 이날 이후로 1954년 9월21일까지 한라산에 대한 금족령이 내려졌다. 무장대 소탕을 위해 한라산 입산이 통제됐다.


    정부 쪽에서 토벌대의 수가 남로당 무장부대 세력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정부 쪽에서 토벌대의 수가 남로당 무장부대 세력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4·3사건의 가해자는 누구인가?=가해자는 크게 토벌대와 무장대로 나뉜다. 토벌대는 국가 권력에 해당하는 서북청년단, 경찰, 군인 등으로 구성됐다. 토벌대의 규모는 수천명, 남로당 무장대의 숫자는 최대 500명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진상조사보고서에서 가해자를 알 수 없는 피해자를 제외하면, 국가가 보낸 토벌대, 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비율은 각각 86.1%, 13.9%다. 희생자 중 압도적 다수가 정부(군·경) 진압 작전에 희생됐다. 4·3사건에서는 비무장 민간인들의 희생이 상당했다. 어린이와 여성, 노인까지 살상됐다. 


    정부 진상보고서에 나와 있는 ' 제주4·3사건' 가해자 관련 통계/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정부 진상보고서에 나와 있는 ' 제주4·3사건' 가해자 관련 통계/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4·3사건의 희생자는 몇 명일까?=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살상이었다. 무고한 양민의 희생이 컸다. 2003년 정부 조사 당시 제주4·3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4028명이었다. 그러나 7년여간 총 희생자 수는 당시 제주도민의 9분의1에 해당하는 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1950년 정부에 보고된 인명피해가 2만7719명이라는 점, 6·25 전쟁 중에도 학살은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주4·3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를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3사건 동안 발생한 피해는 △자수자 살상 △피난 입산자 살상 △보복 살상 △형무소 재소자 희생 △고문·구타 후유증 △연좌제 피해 등 그 규모가 크고 종류가 다양했다.


    '4·3사건' 기간 동안 무장대에 의한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4·3사건' 기간 동안 무장대에 의한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사진=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 캡처


    ◇4·3사건 기간 당시 좌익 세력에 의한 희생이 있었나?=있었다. 2003년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수는 1764명으로 집계됐다. 무장대, 토벌대에 의한 희생이 모두 있었지만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검증결과]

    "제주 4·3은 남로당 좌익 폭동에 의해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라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발언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4·3사건은 4월3일 하루만의 사건이 아니다. 7년여간 좌익 청산을 목적으로 국가 권력에 의해 이뤄진 학살을 모두 포함한다. 4·3사건의 3만 여명의 희생자 중 절대 다수가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됐다. 4·3사건의 기간 동안 남조선노동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4·3추념식이 좌익 폭동에 희생된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는 홍 대표의 발언은 7년여간의 학살 모두가 좌익 세력에 의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4·3추념식은 이념 갈등으로 국가 권력에 의한 발생한 절대 다수의 양민 희생자에 대한 폭력을 반성하고 그 피해자를 추사하는 행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검증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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