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등록 : 2020.10.13 11:17

    수정이유: 절반의 사실로 판단한 이유에 대한 부연 설명

    검증내용

    "차벽 자체가 위헌은 아니다." 지난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이 발언한 내용이다. 경찰 차벽을 둘러싼 '위헌' 논란은 10월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쟁점이다.

    개천절(10월3일)에 이어 한글날(10월9일)을 앞두고도 서울 도심 집회와 경찰의 차벽 설치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감염병 예방이 중요하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8ㆍ15 광복절 집회 과정에서 다수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별도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경찰 차벽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집회 현장에는 경찰 대형 버스들이 거대한 차벽을 이뤄서 방어막을 형성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경찰이 차벽을 통해 시민들의 통행을 막은 게 위헌이라면 개천절이나 한글날 집회는 물론이고 다른 행사(집회)에서의 경찰 행동도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김창룡 경찰청장이 차벽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고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다. 경찰 차벽 논란과 관련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것은 헌법재판소의 2011년 6월30일 결정(2009헌마406)이다. 민모씨 등 참여연대 간사 9명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건이다.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하자 서울광장을 비롯해 서울 곳곳은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경찰청은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건너편 서울광장에서 불법 시위를 벌이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경찰버스 차벽을 세운 뒤 통행을 제지했다.

    민씨 등 청구인들은 2009년 6월3일 경찰버스로 서울광장을 둘러싸 통행을 제지한 행위와 관련해 거주ㆍ이전의 자유와 공물이용권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09년 7월21일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싸 서울광장 통행을 제한한 게 기본권을 침해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우선 헌재는 "거주ㆍ이전의 자유는 거주지나 체류지라고 볼 만한 정도로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장소를 선택하고 변경하는 행위를 보호하는 기본권"이라며 "서울광장에 출입하고 통행하는 행위가 그 장소를 중심으로 생활을 형성해 나가는 행위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거주ㆍ이전의 자유가 제한됐다고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헌재는 행동자유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달리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 중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시위 참여자는 물론이고 일반인까지 서울광장 통행을 전면적으로 제지한 행위에 대한 판단이다.

    헌재는 "이 사건 통행제지행위는 서울광장에서 개최될 여지가 있는 일체의 집회를 금지하고 일반시민들의 통행조차 금지하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하며 극단적인 조치이므로 집회의 조건부 허용이나 개별적 집회의 금지나 해산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서울광장 주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거나 일부 시민들이 서울광장 인근에서 불법적인 폭력행위를 저지른 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폭력행위일로부터 4일 후까지 이러한 조치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급박하고 명백한 불법ㆍ폭력 집회나 시위의 위험성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판단했다.

    "이 사건 통행제지행위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필요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보기 어렵고, 가사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집회방지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울광장에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는 경우 일반시민들의 통행이나 여가ㆍ문화 활동 등의 이용까지 제한되므로 서울광장의 몇 군데라도 통로를 개설하여 통제 하에 출입하게 하거나 대규모의 불법ㆍ폭력 집회가 행해질 가능성이 적은 시간대라든지 서울광장 인근 건물에의 출근이나 왕래가 많은 오전 시간대에는 일부 통제를 푸는 등 시민들의 통행이나 여가ㆍ문화 활동에 과도한 제한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목적을 상당 부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고려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민의 통행을 전면적으로 제지한 것은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한다고 할 수 없다."

    헌재는 "대규모의 불법ㆍ폭력 집회나 시위를 막아 시민들의 생명ㆍ신체와 재산을 보호한다는 공익은 중요한 것이지만,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공익의 존재 여부나 그 실현 효과는 다소 가상적이고 추상적"이라며 "이 사건 통행제지행위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위헌 7명, 합헌 2명 등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당시 헌재가 경찰이 차벽을 세우는 행위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헌재는 2009년 6월3일 서울광장 주변을 경찰버스로 둘러싸 민씨 등의 통행을 제지한 행위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헌재의 결정은 당시의 상황과 경찰의 대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려졌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김창룡 경찰청장이 차벽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원론적으로는 맞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차벽에 대해 "문제는 조건이 있다.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있을 때 최후적으로만 사용하라고 했다. 그 요건을 충족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차벽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는 맞는데 경찰청장이 대답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경찰의 총기 사용 사례를 들어 이유를 설명했다. 

    한 교수는 "(예를 들어) 경찰이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지만 (경찰청장이 그렇게 말하려면) 어떤 경우에 어떤 절차에 따라 사용해야 위헌이 아니다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헌재는 차벽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일반적 자유행동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해 위헌으로 결정했다. 차벽 자체보다는 어떤 공익을 침해했는지, 당시 상황이 위헌 결정에 중요한 요소였다. 김창룡 경찰청장의 ‘차벽 자체가 위헌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원론적으로 맞을 수 있지만, 어떠한 조건인지를 따져 위헌 여부를 가릴 수 있다. 따라서 절반의 사실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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