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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일본이 최근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조선인 강제동원을 미화하는 증언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군함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재일 교포 스즈키 후미오의 인터뷰입니다. 스즈키는 조선인 따돌림이 있었냐는 질문에 "아니다. 오히려 귀여워해줬다"며 조선인 차별이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SNS 이용자들은 그의 증언을 근거로 군함도에서 조선인 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증내용

    ▲ 검증 방법

      유튜브에 올라온 스즈키 후미오의 인터뷰 영상 전문을 번역했습니다. 해당 발언을 전문가 인터뷰 및 관련 역사적 사료로 검증했습니다. 재일대한민국민단 나가사키 현 단장과의 인터뷰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


    ▲ 검증 대상


      유튜브에 올라온 재일교포 스즈키 후미오 영상입니다. 설명란에는 재일 동포 단체인 재일대한민국민단 나가사키본부의 단장을 지냈던 스즈키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즈키는 군함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광부였던 아버지는 오장이라는 불리는 탄광 중간관리자였습니다. 그가 회상한 어린 시절엔 조선인 차별은 없었습니다.


    저는 괴롭힘이라고 할 만한 것은. 뭐라 말해야 하나. 그 반대로 귀여움은 받았지만. 주위 사람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귀여움을 받았다곤 말할 수 있지만 손가락질하면서 ‘쟤 조선인이야’라든지 그런 말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Q.일을 농땡이 부리는 광부가 있다면 특히 조선인 광부에겐 채찍으로 때려서 학대한 적이 있지 않느냐 하던데요?

    당시는 조금이라도 많이 (굴을) 파는 것이 나라의 정책이었으니까요. 그것보단 잘 판다든가. 그렇게 채찍을 때린다면 그것만큼 일할 수가 없겠죠.


    한국정부의 반발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자 일본 SNS 이용자들은 차별이 없었다는 스즈키 후미오씨의 발언을 근거로 조선인 강제 노동을 부정합니다.  


     '현지에서 일한 경험이있는 사람들, 가족들의 증언에 "강제 연행 된 차별적 인 지옥 같은 노동을 당했다"등의 증언은 없었다. 원래 거짓말 이니까 당연합니다.' (@Asteris********)

     '사실을 사실로 보지 않는 한국, 무조건 강제 노동이 있었다고 인정하게 원하는 것 같지만, 그런 일한 노동자에 차이는 없었다' (@Sato********)

     


    ▲검증 내용


    1. 스즈키 후미오는 강제동원 조선인 가족이 아니다

      국내에 알려진 스즈키 후미오의 증언은 인터뷰 일부분입니다. 19분 분량의 인터뷰 전문을 번역하자 스즈키 후미오가 생활했던 구체적인 시기와 상황이 드러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마 (일본에) 빨리 오셨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래서 빨리 안정을 가졌다고 할까. 30호실 아파트를 빌릴만한 목표도 여러 갠가 만들고. 그리고 나서 시골에 신부를 받으러 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쇼와) 8년생이니까 어머니는 7년인가 6년인가에 하시마에 오지 않으셨을까요. 

    (1분 11초 ~ 1분 45초)


    (아버지가) 당시 오장이어서 몇 명인가 부하를 데리고 있었던 것 같고. 급료를 제가 받으러 가려고 했거든요. 급료과인지 뭔지. 딱 거기 터널 출구 쪽이었죠. 그랬더니 엄마가 아빠가 지금 말한 것처럼 오장인가 뭔가 해서 급료는 좀 좋았다고 자랑스럽게 급료를 받으러 간 기억이 있습니다. 

    (9분 32초 ~ 10분 7초)


    학교에서 돌아오면 역시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놀았다고 할까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까지 신문 읽기를 했었습니다. 신문 발행일엔, 어디서 샀더라. 30호실(집)부터 계단을 내려가 나가서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아침 두부를 사러 간 적도 있습니다. 아래층으로. 거기에 신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문을 사러 가면 ‘장하다’라든가. 아직 유치원생이었으니 칭찬의 의미로 ‘열심히 해야지’라든가 모두가 귀여워했었던 거 같습니다만

     (2분 48초 ~ 3분 38초)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징용이 시작된 건 1939년입니다. 그때부터 일본은 징용, 할당, 모집 등 합법의 탈을 쓴 폭력으로 조선인을 강제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스즈키는 그보다 6년 전인 1933년(쇼와 8년) 군함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강제동원자가 아니라 돈 벌기 위해 스스로 군함도 탄광으로 가서 일찌감치 정착한 이른바 '기주 조선인'이었습니다. 



      기주 조선인은 강제동원자와 근무 환경과 거주지가 크게 달랐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탄광에서 중간관리자인 오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즈키 가족이 살았다는 30호 아파트는 강제동원자 숙소가 아닌 직원 사택으로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였습니다. 


    [인터뷰 : 정 혜 경 /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

    "이분들의 경우에는 직장 내에서 관리직에 있다거나 탄광의 경우에는 숙련된 광부로서 생활하신 분들이고요. 그러기 때문에 거주 환경 자체가 강제동원된 분들과는 달라요."


    2. 스즈키씨 가족은 1943년에 군함도를 떠났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일제는 군수물자를 대기 위해 조선인 강제동원에 열을 올렸습니다. 과도한 채굴과 폭력이 만연했고 탄광에서 사망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이때 스즈키 가족은 군함도를 떠났습니다. 현 재일대한민국민단 나가사키 단장도 스즈키 후미오 가족이 섬을 떠났다는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


    [인터뷰 : 강 성 춘 / 日 나가사키 민단 단장]

    "섬에서 시내로 갈 수 있는 배가 있는데 그때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스즈키 후미오 씨에게서) 들었습니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상자 등 지원위원회는 1943년에서 1945년까지 조선인 약 500명에서 800명이 군함도에 강제 동원돼 노역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미 섬을 떠난 스즈키 후미오는 태평양 전쟁 시기 극심했던 조선인 강제 노역의 시기를 피해갔습니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상자 등 지원위원회는 활동 결과보고서  



    ▲ 검증 결과

      스즈키 후미오는 강제동원된 조선인 가족이 아닙니다.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나 가족이 아닌 기주 조선인의 증언을 내세웠고, 일본 누리꾼들은 이를 토대로 조선인 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즈키의 증언은 군함도에서 조선인 차별이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 없기에, 일본 누리꾼의 주장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검증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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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럽위원회, FIRST D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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