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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위안부는 매춘'이라 발언한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월간조선'에 기고했다. ‘'전태일 평전'에 따르면 전태일 월급이 1964년 1,500원에서 1967년 15,000원으로 10배 올랐기에 착취라고 말할 수 없다’, ‘1970년 전태일 연봉이 당시 1인당 GDP(국내 총생산)의 3.2배였으니 착취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60, 70년대 노동 환경을 정당화하고, 당시 시대상과 기본적인 통계마저 왜곡하고 있는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태일이 착취를 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타당한지 검증했다.

    검증내용

    [검증방식]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전태일 열사 월급을 현재 가치로 환산했다. 서울시 공공 데이터에서 60, 70년대 물가를 확인했다. 전태일 기념관을 찾아가 1970년대 당시 노동 환경을 확인했다. 박정희 시대에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근거로 인용되는 ‘한계 노동생산성’에 관한 학계의 입장을 전문가에게 물었다. 


    [검증내용]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전태일 열사 월급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결과, 1964년에 지금 돈으로 5만5천 원을, 1967년에 46만 원을 받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저임금이다. 10배 올랐다 하더라도 생계유지가 어려운 절대 빈곤 상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노동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당시 노동 환경도 살펴야 한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청계천 봉제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일요일까지 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 일주일 7일 정도 하루 15시간 일했던 경우도 비일비재했고요. 80년대까지만 해도 한 달에 격주로 일요일 이틀 정도만 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임현재 / 전태일 열사 동료 : 아무 얘기 못 하고, 반항 못 하고 따질 수 없는 시다나 보조, 나이 어린 여공들은 정말로 착취를 많이 당했고 힘들었습니다.]



    GDP(국내 총생산)와 임금은 적절한 비교 대상이지도 않다. GDP는 아이, 노동, 아이, 노인, 주부, 군인 등을 모두 합친 국민 한 사람의 평균 생산액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류석춘 교수의 주장은 ‘박정희 시대에 노동자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한계노동생산성’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박정희 시대를 정당화하지만, 학계에서도 반박이 있는 이론이다.

    [정성진 /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요즘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많이 지급하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효율성 임금 이론'도 나오거든요. 한계노동생산성으로 임금을 설명하려고 하는 이론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설명력이 없습니다.]



    [검증결과]

    전태일 열사의 월급은 10배가 올랐지만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던 금액이었다. 류석춘 교수는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등 다른 변수를 모두 무시하고, 단순히 10배 올랐다는 상승 폭만을 강조해, 착취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라는 류석춘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검증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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