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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2018년 3월 1일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문재인 탄핵 3.1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서 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는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 나가자."라며 "3.1 운동은 이승만이 일으킨 것"이라고 발언했다.

    최종 등록 : 2019.03.06 08:35

    검증내용

    ■ 검증대상 

    지난 3월 1일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문재인 탄핵 3.1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서 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는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 나가자며 "3.1 운동은 이승만이 일으킨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과연 사실일까?


    ■ 검증방식/결과 

    1. 공훈전자사료관에서 공개한 '독립운동사 제2권'은 3.1 운동의 주도체를 종교 단체와 학생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은 "1919년 2월 24일 천도교와 기독교의 협력에 불교와 학생들의 합류가 이어져 3.1 운동의 주도체가 비로소 단일화되었다."고 설명하며 "2월 28일까지 민족대표 33인이 선정되었고 독립선언서의 인쇄, 배포 등 거사에 필요한 준비가 완전히 끝났다."고 당시 상황을 덧붙였다.


    2. 3.1 독립선언서 선포와 함께 만세 운동이 시작됐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은 현장에 없었고 민족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이 전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3.1 운동이 준비 단계이던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미국에 있었다. 박은식, 김도형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파리강화회의의 한국 대표로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아 결국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수일이 지난 3월 10일 서재필로부터 3.1 운동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3. 3.1 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것은 약 한 달 전에 선포된 2.8 독립선언서였다. 국가기록원의 국가지정기록물인 '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에 따르면 이 선언은 1919년 2월 8일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재일본도쿄조선YMCA 회관에서 낭독됐다. 도쿄 유학생이었던 이광수가 대표로 집필했고, 국내에 반입되어 3.1 독립선언서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2.8 독립선언 역시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YMCA가 국제단체인 점을 고려할 때, 같은 단체에서 활동한 이 전 대통령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95년 중앙일보가 기획한 '이승만과 대한민국 탄생' 기사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의 YMCA 주 활동은 국내에서 이뤄졌다.


    4. 이 전 대통령이 당시 3.1 운동 계획에 함께했던 김성수에게 보낸 '밀서'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2015년 8월 인터넷 언론 '오늘의 한국'은 당시 중앙학교를 인수한 김성수에게 이 전 대통령이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론 원칙이 정식으로 제출될 이번 강화회의를 이용하여 … 자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 국내에서도 이에 호응해주기 바란다.'라는 밀서를 보냈다고 전했다. 뉴데일리도 지난달 25일 칼럼에서 김성수의 회고록을 토대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밀서를 다룬 연구 자료는 3.1 운동 연구 전체에 비해 상당히 부족했다.


    4. 한기총은 범국민대회에서 3.1 운동 이승만 주도설과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기독자유당 지지를 호소했다. 전광훈 목사는 "이승만이 3.1 운동을 일으켰다."라는 발언과 함께 "정부가 광화문에서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이 것은 3.1절 행사가 아니라 범죄행위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1948년 건국설'을 이야기하며 "건국을 부정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함께 연단에 오른 고영일 변호사는 "우리 교회가 기독자유당에 참여해서 여의도에 입성시킬 때 문재인 정권이 퇴진할 줄로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5. CBS 뉴스는 지난 3월 1일 뉴스에서 이 행사를 두고 '사실상 정치 집회'라고 보도했다. 3.1 운동 행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강한 정치, 종교 성향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승만이 3.1 운동을 일으켰다."라는 주장이 불편부당성과 객관성을 갖춘 시선에서 나온 것인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종합판단

    자료를 전반적으로 검토했을 때 이승만 전 대통령이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에서 중심이 되거나, 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역사는 없다. 3.1 운동을 다룬 기존 연구에서도 일부 보수 매체가 주장하는 '밀서' 자료를 제외하면, 이 전 대통령과 큰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33인 민족대표 자료에서도 이 전 대통령이 '일으켰다'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또한 범국민대회 행사가 문재인 정권 탄핵을 주장하며 당파성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이 3.1 운동을 일으켰다."라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데일리 스냅타임 팩트체크는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단했다.

    검증기사

    최종 등록 : 2019.03.14 15:19

    수정이유: 조사 수정

    검증내용

    전광훈 목사는 지난 1일 한국기독교총연합이 주최한 3.1운동을 기념한 범국민대회에서 "3·1 독립운동은 이승만이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 역시 3·1운동의 기획자를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지칭하고 있다. 3·1운동이 기획되던 1919년 초 이 전 대통령은 미국에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국외에 있던 이 전 대통령이 국내의 거국적 운동을 조직했다는 것일까. 

    이 전 대통령이 3·1운동을 기획했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는 '밀서'다. 1918년 12월, 워싱턴DC에 머물던 이 전 대통령이 3·1운동을 조직한 것으로 알려진 김성수, 송진우, 현상윤 등 중앙학교의 인물들에게 국내 구국운동을 일으켜 달라는 밀서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검증대상]  

     이 전 대통령이 김성수, 송진우, 현상윤에게 밀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3·1운동을 직접 기획했다는 '이승만 3·1운동 기획설'. 


    [검증 방식] 

    1985년 출간된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 등 김성수 평전에서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밀서를 받았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김성수와 함께 밀서를 받았다는 현상윤의 회고록 역시 확인했다.


    [검증과정] 

    ◇'3·1운동 밀서'의 출처는 1985년에 출판된 김성수 평전  


    '이승만 기획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김성수 평전인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1985, 동아일보사)에 담긴 일화를 인용한다.  


    당시 중앙학교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성수, 송진우, 현상윤이 대규모의 국내 운동을 일으키라는 이승만의 밀서를 받고 조국독립의 정신을 각성, 거국적 독립운동을 준비했다는 내용이다.


    2012년에 출판된 또다른 평전 '인촌 김성수의 삶'(나남)에서도 이 내용이 수록돼 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취재 결과 저자는 밀서 관련 내용이 처음 언급된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를 참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밀서 일화는 1985년에 출판된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를 뿌리로 한다. 하지만 이 평전에서 밀서 일화의 출처 등은 명시돼 있지 않다. 


    ◇다른 평전에 '밀서'는 없다 


    인촌기념회에서 1976년에 출판했던 '인촌 김성수전'엔 관련 내용이 없다. 책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과 김규식이 조선민족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성수 등이 숙의 끝에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998년에 출판된 '문화민족주의자 김성수'에서도 "중앙학교 3인방이 이승만과 김규식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다는 사실에 고무돼 국내 독립운동을 구상하게 됐다"고 서술돼 있다.


    2009년에 출판된 '대한민국 부통령 인촌 김성수 연구'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풍조가 국내·외로 퍼지는 등 정세 변화에 따라 김성수는 천도교와 손잡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시대적 과제로 여기게 됐다고 밝힌다. 


    대부분의 평전에선 김성수 등 3·1운동 초기 주도세력이 이 전 대통령과 김규식이 민족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자극을 받은 수준으로만 서술하고 있다. 밀서를 통해 직접적으로 3·1운동 조직에 관여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밀서 수령자' 회고록에도 밀서는 없다 


    밀서를 받았다는 당사자 중 현상윤의 회고록 '기당 현상윤 전집 4권 사상편'에도 밀서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현상윤은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이후, 미주에서는 이승만 외 2명이, 상해에서는 김규식이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로 향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외쳤다는 것을 들었다"며 "그러나 이것은 모두 국외의 운동이니, 중앙학교의 3인은 국내에서 대규모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오영섭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연구교수는 이같은 '밀서론'에 대해 "사료로 증명이 안 되는 부분"이라 못박았다. 오 교수는 "김성수 평전에 실린 일화가 이 전 대통령의 3·1운동 기획설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음을 이전부터 인지하고 있다"며 "사실로 증명되기 위해선 명확한 사료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사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검증결과] 


    "이승만이 밀서를 통해 직접 3·1운동을 지시하고 기획했다"는 주장은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사실로 입증이 불가능하며 진실로 통용될 수 없는 정보인 탓에 '대체로 거짓'에 가깝지만, 판단 근거가 명확치 않아 '판단 유보'로 판정한다.                             

    검증기사

    • [팩트체크]이승만 전 대통령이 3.1운동을 지시하고 기획했다? - 머니투데이 뉴스

      근거자료 1: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 (동아일보사 편집부, 1985)

      근거자료 2:  인촌 김성수의 삶 : 인간 자본의 표상 (백완기, 나남, 2012)

      근거자료 3:  대한민국 부통령 인촌 김성수 연구 (이현희, 나남, 2009)

      근거자료 4:  인촌 김성수전 (인촌기념회, 1976)

      근거자료 5:  문화민족주의자 김성수 (김중순, 일조각, 1998)

      근거자료 6:  이승만의 삶과 꿈 (유영익, 중앙M&B, 1996)

      근거자료 7:  기당 현상윤 전집 4 (현상윤, 나남, 2008)

      근거자료 8:  YMCA학생운동과 3ㆍ1운동의 초기 조직화 (장규식, 2002, 한국근현대사연구, 한국근현대사학회)

      근거자료 9:  현상윤과 3.1운동(김기승, 2008, 공자학 15호, 한국공자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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