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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증내용

    일본은 1990년대까지는 국가 간의 청구권 협정과 별개로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 다름 아닌 일본과 소련이 체결했던 공동선언에서다.


    일본은 과거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의 소련에 대한 보상 청구권에 관해 국가 간 협정과 개인 청구권을 별개라고 봤다. 지난 1991년 3월, 다카시마 유슈 당시 외무대신 관방심의관은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가 소련에 대한 청구권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일본-소련 공동 선언에서 청구권 포기는 국가가 자동적으로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외교 보호권'의 포기"라고 설명하며 "일본 국민 개인이 소련이나 소련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개인의 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금의 한국 정부와 비슷한 조약 해석이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하 한일협정) 체결 당시부터 '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외무성의 내부 문서에서 확인됐다. 평화조약에서 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의 일본 정부 비밀문서. 
    일본 정부가 최근 비밀지정을 해제한 문서(붉은선 1). 일본 정부가 1965년 4월 6일(쇼와 40년 4월6일) 작성한 비밀 문서(붉은선 2). 
    '개인이 상대국의 국내법상 청구권을 갖는지 여부와는 관계 없다'(붉은선 3). '보상청구권을 포기하는 경우 이 청구권은 국가의 
    청구권인 것으로 생각된다'(붉은선 4). (사진 출처=연합뉴스 제공)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전후에 작성한 외무성 내부 문서에서 '외교보호권'과 '개인청구권'의 개념을 법적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3월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고, 국민의 재산(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는 일본 외무성의 발언이 담긴 회의록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1991년 8월 27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순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이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가 가지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이지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답한 내용이 담긴 참의원 회의록. 
    (사진 출처=연합뉴스 제공)


    지난 1991년 8월, 당시 야나이 순지 외무성 조약국장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밖에 1994년에는 일본 외무성 조약국 법규과장이 '외무성 조사 월보'에서 "한일청구권 협정 등의 조약에서 규정하는 '국가가 국민의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개인이 갖는 국내법상의 개인 청구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은 이제서야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두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구권협정의 대일청구요강 제5항 중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에서 피징용자에 대한 체불임금 및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명시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해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불법적이고 노예적인 강제 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협정 이후 양국의 문헌에도 "식민지배 배상 청구가 아니라 양국 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협약"임이 명시돼 있다.


    따라서 해당 협정은 일제의 국민징용령을 전제로 한 '징용'으로 발생한 미지급 임금, 보상금 등에 대한 협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협정에는 강제 노역 등 일본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는다. 식민지배를 '합법'으로 규정한 틀 안에서 협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즉, 국민징용력의 규범적 효력 자체에서 벗어난 '불법적 강제노역'에 대한 위자료 성격의 배상금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창록 교수는 "이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은 '일제에 의한 35년간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대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일제강점기의 국가 총동원법이나 징용령이 합법이었음을 전제하지만) 우리 대법원에서는 이들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반하기에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그런 불법행위(강제동원)에 대해서는 65년 협정에서 해결한 적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의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애초에 배제돼 있었다는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이번 판결은 청구권 협정을 뒤엎는 것'이라는 반발은 사실과 다르다.


    또한 일본은 오래 전부터 '정부 간 외교협정은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일 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별개'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제 와서 이를 부정하는 것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증기사

    • 日, 징용 배상의무 없다? '빼박' 증거는 차고 넘쳐

      근거자료 1: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 회의록 (1991. 8. 27)

      근거자료 2:  1994년 외무성 조사 월보

      근거자료 3: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창록 교수 인터뷰

      근거자료 4:  1965년 일본 외무성 문서

      근거자료 5: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회의록

      근거자료 6:  관련 언론 보도